'memo'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1.07.26 디자인 사용자
  2. 2011.07.01 예측가능성
  3. 2011.06.21 장식은 범죄다? 아니다 미덕이다
  4. 2011.03.01 가치의 변화
  5. 2011.02.24 자아 확립과 비움 (2)
  6. 2011.02.22 시간의 지배
  7. 2011.02.20 진리와 변화
  8. 2011.02.07 자본주의의 공포
  9. 2011.01.20 교사의 역할
  10. 2011.01.14 광고의 문제

디자인 사용자

memo 2011.07.26 17:47
디자인에 관련된 계몽적 혹은 계도적 글에서
'클라이언트'가 아닌 '사용자' '독자' 등의 표현을 자주 발견한다.
나 또한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문득,
'사용자가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말하는 포괄적 의미의 사용자란 과연 누구인가?

30/40대 독자, 중산층의 독신 여성, 저학년 어린이 등등
'사용자'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표현이 흔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30/40대 독자'란 과연 누굴 말하는 건가
떠올려보면 상당히 혼란스럽다.
30/40대 독자는 너무나 많다. 그들을 과연 '사용자'라 말할 수 있을까?
좀더 구체적으로 '사용자'를 설정하면 괜찮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구체적으로 '사용자'를 규정하는 표현들을 많이 본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다. 가령 아래 처럼
'30대 월 수입 300만원, 미혼, 서울거주, 전세, 긍정적, 숏다리, 안경을 낀, 주량 소주 1병....

어쩌면 디자이너가 말하는 사용자는
디자이너 안에 내재된 경험과 편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도 모른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오래된 진리처럼
실제로 한명의 인생이나 생각도 경험하기 벅찬 우리네 삶에서
무슨 수로 '사용자'란 포괄적인 인간상을 가늠할 수 있단 말인가...
가상으로 설정된 사용자를 위하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글을 정당하게 갈무리 짓기 위해 '사용자'란 표현을 남발하지만
이것이 디자인 분야에 또 다른 공허한 레토릭을 낳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어쩌면 디자인에선 천박한(?) 클라이언트(의뢰자)란 표현이
더 순수하고 정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왜냐면... 우리(디자이너)는 그들을 훨씬 잘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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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가능성

memo 2011.07.01 15:53
세상은 언제든 접속가능하고 표준화된 정보 루트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매 순간 업데이트 된다.
새로운 현상에는 늘 새로운 정보가 뒤받침한다.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정보가 흘러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다면 페이스 북 등의 SNS를 보면되고
어떤 증상에 대해 알고 싶다면 네이버의 지식 in을 검색하고
뉴스는 이미 온라인에 넘쳐나고
영화를 보고 싶으면 각종 사이트에서 평점을 검색한다.

이런 정보는 선택의 기준을 제시한다.
최소한 최악의 선택을 피할수 있게 해주며
우리가 그 정보를 신뢰하건 신뢰하지 않건
어떤 선택에 앞서 예측가능성을 높혀준다.
신뢰 있는 정보 앞에서는 그대로 믿으면 되고
신뢰 없는 정보 앞에서는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되고
언제든지 내 생각을 그 사이트에 업데이트 시킬 수 있다.

모든 것이 예측가능해지는 세상이 참 편리하긴 하지만
왠지 무섭기도 하다.
예측 불가능이 주는 모험과 쾌감, 그리고 행복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화를 보고
200% 이상의 엄청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평점과 평가를 살피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대부분 어떤 기대감에 영화를 접한다.
그 기대감의 만족도는 늘 80%를 밑돈다.
자칫 스포일러라는 똥을 밟으면 기분이 더럽기도 하다.

이제 좋든 싫든 예측가능성은 우리 삶에 일상이 되었다.
이 예측가능성에 길들여진 일상은 모든 것을 대형화 계급화 시킨다.
대형마트에 가면 뭐든지 살수 있고,
대형서점에 가면 무슨 책이든 구할수 있다는 점,
대형기업은 뭐든 만들수 있을 것 같은 점,
대형언론의 정보는 왠지 신뢰할 수 있다는 점,
대형은행은 왠지 믿고 돈을 맡기거나 빌릴 수 있다는 점,
높은 분은 왠지 똑똑하고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는 믿음,
돈 많은 사람은 왠지 행복할 것이라는 부러움,
공부 많이 한 사람은 왠지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한다는 기대 등등
우리는 모든 것은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대형마트나 서점 등에 가면 밖에 날씨가 어떻든
비슷한 습도와 온도 등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예측가능한 곳에서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엄청난 불쾌감을 갖게 된다.
높은 사람들의 비도덕적 행동에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이 예측가능성의 범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푹푹찌는 여름에 대형마트의 에어콘이 고장난 것처럼...

최근 케이블 TV에서 다시 본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이런 예측가능성의 조작성과 부정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워낙 유명한 영화이기 때문에 줄거리를 말하진 않겠다.
범죄예방을 위해 체포된 사람들을 다시 재평가하고 석방되었다는
나래이션으로 그 영화는 끝난다.
우리는 늘 미래를 보고 싶어한다.
그런 점에서 예측가능성에 대한 맹신은 당연하다.
예측가능성은 많은 측면에서 극도의 효율성을 보여주지만
그늘이 존재하고 있음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예측가능성에 오는 지루함과 일탈이
훨씬 더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상황을 악화 시킬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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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은 범죄다'라는 아돌프 로스(오스트리아)의
합리성에 근거한 과격한 표현에 문득 반감이 생겼다. 

독일의 관료제, 합리적 관념론이 유대인 대학살을 낳았다는 사실과
바우하우스의 물질에 대한 기호적 접근이 모더니즘이란 포장으로
세상의 모든 물건을 같은 모양으로 바꿔 놓았다는 끔찍한 사실을 상기하면

'장식은 범죄다'란 표현은 '장식은 미덕이다'란 표현으로 바꿔
비록 그 순간은 불합리하더라 하더라도 '다양성의 미덕'으로 장려해
이 사회가 일관된 합리성으로 점철되어 비인간화 되는 것을 우려해야 한다.

자연은 자칫 불합리해 보이는 복잡성을 띄고 있어 보이지만
그 안에 매카니즘은 엄청나게 안정되어 있으며 
개개의 요소들은 소름끼칠 정도로 존재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불합리해 보이는 것이 이렇게 안정될 수 있는 가장 원인은
바로 다양성과 그 연결성에 있다는 점을 상식으로도 알수 있다.

이런 점에서 '장식은 범죄다'라는 합리적 표현은 비상식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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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변화

memo 2011.03.01 15:50
최근의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의문에서 촉발된
나의 삶과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나는 어떤 가치에 둘러쌓여 살고 있는 것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상황적 변화를 통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종속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둘러싼 어떤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최근 자아의 개념이 확대되고 자아를 인식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지향이 분명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이 사회가 구성한 가치지향의 폭 안에서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에
특별히 다른 삶이란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지난 1년과 올해 이런 의문에 의해 읽게된 몇가지 책에서
지난 100여년의 가치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이라 말한다.
즉, 기존의 물건이 사용하는 것을 중요시한 사용가치가
이제는 자본의 축척을 위한 도구로 전락 됨으로서 화폐의 등장과 함께
물건이 교환을 위한 교환가치로 전락되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화폐는 본래의 교환의 척도나 도구로 이용되던 것에서
화폐가 자본적 전환을 이루며 사용가치가 급상승 되었다.
결국, 물건과 화폐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보드리야드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빌린
자신의 책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교환가치의 시대에서
기호가치의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이의 기초를 세운 곳이 바로 '바우하우스'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드 바우하우스가 기존의 물건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물건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세히 쪼개 각각의 특성을 살피고 그 사용성을 극대화 시키는 과정을 통해
어떤 물건의 '기호' 체계를 세우는데 공헌했다고 평가한다.
즉, '텔레비젼'라는 물건은 어떤 요소들이 각기 그 특성을 발휘하면서 구성됨으로서
일종의 '텔레비젼'라는 기호적 가치를 획득했다는 의미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기호가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과거 플라톤이 진짜 개는 이데아에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여러 형태의 개는 그림자라고 표현했듯이
진짜 텔레비젼이라는 기호는 우리 머리속에 자리잡고
우리 눈에 보이는 텔레비젼는 그림자로서 여러 형태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사회는 이런 수많은 기호적 가치의 홍수속에서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살아가고 있다.
마르크스의 '교환가치'는 이제 '기호가치'로 전환되었다고 보드리야드는 선언하듯 단정한다.

최근 이런 '기호가치'의 특성을 파악한 자본가와 기업들은 이를 교묘히 활용해
자신들의 자본에 기호를 도입함으로서 시장을 형성했다.
우리가 최근 많이 언급하는 '브랜드'가 바로 이 기호이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무형적 기호는 마치 텔레비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호와 같은 작용을 한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수많은 제품들은 또 하나의 기호를 형성함으로서 우리는 애플이라는 기호(브랜드)를 소비한다.

이렇게 '사용가치'는 화폐의 자본화에 의한 '교환가치'로
또 '교환가치'는 물건을 정의하는 '기호가치'로
그리고 '기호가치'는 시장에서 소비의 패턴을 형성하는 '소비가치'로 전환되었다.

최근, 환경문제와 인권, 민주주의의 문제,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세계화에 대한 문제로 인해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중동사태는 억압된 중동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저항해
세계화에 맞선 지역화를 구축하려는 하나의 흐름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곳곳에서 비주류적 형태로 현재의 가치에
저항하여 종교적, 사상적, 전문적, 지역적 운동들이 활발하게 이어진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체제다.
시장의 지나친 소비조장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소비구조와 패턴 변화를 위한 방향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나는 이를 '인간가치'라 여기고 있다.
이제 '소비가치'는 '인간가치'로 전환하고 있다고 본다.
수많은 기업들인 이런 '인간가치'를 위한 경영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며
수많은 소셜네트워크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변화를 위한 기본적 바탕이 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인간가치' 다음이다.
그 다음은 과연 어떤 가치로 전환될 것인가이다.
왜냐면 이런 변화는 역사를 거듭할수록 그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에 약 100년 걸렸다고 치면
그 다음의 여러 가치 변화는 채 100년도 걸리지 않았고
지금의 가치변화는 그 속도가 더할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교환가치의 큰 틀인 현재의 소비가치를 비판하고
디자인의 사용가치로의 전환, 인간가치로의 지향을 주장해왔다.
사용가치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고
인간가치는 교환가치의 전향적 변화를 의미한다.
어쩌면 이 둘의 가치는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이를 통합할 새로운 가치... 그것이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 모순된 구조를 벗어날수 있는지...
또 내가 과연 지금의 사회 가치에서 자유로울수 있을지...
여하튼 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이렇다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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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자아 확립과 비움

memo 2011.02.24 14:28
어떤 이들은 소비사회가
자신을 부정하고 의지하는 성향을 준다고 우려하며
자아를 확립할 것을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소비사회 속에서
자신을 비우고 탐욕을 줄여
주변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주장은 모두 같은 목적을 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인데
자아를 확립하는 것과 비우는 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이 두 주장에 부화뇌동하여 마구 떠들면서
이 모순된 주장에 늘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만약 내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옳다고 생각하는 주장을 펼칠때
나는 자아를 확립하여 주장해야 하는가 아니면 내 자신을 비우고 귀를 기울여햐 하는가...
혹은, 내가 어떤 이들에게 납치당해 배신을 요구당할때
그들의 요구에 맞서야 하는가...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고 그들에게 우호적이어야 하는가...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다르기에
인류의 성인들은 자신의 내면 깊숙히 비춰 옳다는 것을 행하라 하는데
이 복잡한 사회에서 옳고 그름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을 하는 상황에서
이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지...
내가 옳다는 것을 주장하여 불의에 맞선다면
당하는 이들의 고통이나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종영한 '아테나'에서 정우성과 수애는 사랑을 이루지만
정의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는가...
마지막에 그 둘의 미소가 무척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 둘의 사랑이 중요한지는 알겠지만
그 둘을 둘러싼 그 사이 죽어간 그리고 잊혀지는
많은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정우성과 수애의 존재와 둘러싼 관계와의 모순은 너무 불편하다.

존재와 관계
이 둘은 항상 모순관계라는 점에서 그 균형점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치 자유와 평등처럼...
고민을 할수록 더욱 자기 모순에 빠져들어 결국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렵다.
도무지 딱히 해결책이 없어 조금씩 염세주의자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누가 좀 머리를 딱 치며 "이거잖아 임마!"라고 말해 줄 수 없을까...
존재가 중요한지 관계가 중요한지...
자아확립이 중요한지 자기부정(비움)이 중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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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지배

memo 2011.02.22 11:01

반복되는 시간, 지엄한 시간의 명령에 늘 굴복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은
일종의 감옥처럼 나를 가둔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내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가를 돌아보는 과정이요
미래에 대한 집착은 내가 무언가를 가질수 있는가를 기대하는 과정이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과거의 추억과 영광의 쪼가리를 부여잡고
현재와 미래를 부정하는 삶을 살때가 있다.
과거에 한 순간에 집착하여 현재를 허망하게 보낸다.

미래에 대한 집착은 더욱 무섭다.
자본 사회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줌으로서 나를 움직인다.
성공, 명예, 돈, 갖고 싶은 것들에 대한 기대로 집착하게 한다.
긍정적인 미래로 나를 조정하고,
부정적인 미래로 스스로 불안에 떨게 한다.
미래에 대한 집착을 부여잡고 항상 고통을 받는다.
그것이 미래의 성공이든, 죽음이든...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찰라다. 바로 이 순간
과거를 재창조하고 미래를 담보하는 이 짧은 순간은 늘 망각된다.
이 시간의 경계에서 우리는 시간을 초월할수 있다.
늘 자신이 하는 것, 생각 하는 것을 일깨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 몰두하는 것은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에서 한걸음 물러난다.
몰두함으로서 나오는 산물 또한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을 초월해 존재한다.
수많은 예술작품과 문화적 산물로서 시간을 초월한 존재를 확인할수 있다.

현재에 대한 집착.
이것이 시간에 대한 진정한 집착이다.
현재에 대한 집착은 어쩌면 집착이 아닌 자신의 존재에 대한 충실함이다.
늘 깨어 있다는 말이다.
항상 정신이 깨어 있어 과거와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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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변화

memo 2011.02.20 15:44
사상에서 진리를 쫓는 자와 변화를 쫓는 자의 끊임없는 갈등의 역사가 있다.
데카르트가 끊임 없이 진리를 쫓아 발견한
'나는 생각(의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일한 진리에 가까운 결론(?)을 끌어내었듯
진리에 대한 소망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든 삶의 꿈이기도 하다.

반면, 진리를 포기한 자들은 변화를 인정하며 그 변화를 경험해 나간다.
경험과학이나 여러 실험들을 통한 귀납적 추론을 통해 일종의 결과를 맺고
그 결과들을 취합해 또 하나의 결과를 맺는 과정을 반복한다.

진리, 변화를 쫓는 과정은 어떤 깊이를 향한다는 측면에서 닮아 있다.
그리고 애써 살피지 않는다면 진리와 변화를 쫓는 과정이 별로 달라보이지 않다.
하지만 그 끝은 상당히 다르다.
어떤 연구도 일종의 '마침표'가 있다.
진리를 쫓는 과정은 어떤 상황에 이르러 어떤 진리를 찾았다고 결론짓는다.
마치 데카르트의 진리처럼... 그리고 우리는 그 진리를 맹신한다.
반면 변화를 쫓는 과정은 어떤 상황에 이르러 어떤 결론을 내리지면 또 다른 변수를 찾아간다.
이렇듯 마침표를 찍는 시점에서 진리와 변화는 다르다.
진리를 쫓는 과정은 일종의 포기와 같다. 어떤 진리를 도출했다면 그 정도에서 포기하는 것이다.
인류가 신의 존재를 고민하다가 결국 '판단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것처럼
진리라 인간의 머리와 경험으로는 찾을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변화를 쫓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편하다. 스스로 겪게 되는 경험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운명들을 엮음으로서 하나의 불완전한 결론을 드러내는 것이라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에
'포기'라는 얽매임으로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변화를 쫓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진리를 쫓는 것일 수도 있다.
바로, '변화'라는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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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공포

memo 2011.02.07 13:19
자본주의의 진정한 공포는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것들을 먹어 치운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본을 조롱하든, 자본을 비난하든, 자본에 테러를 가하든
그것은 스타일을 형성하고 상품화 되어 소비됨으로서
자본에 편입된다.
그러면 더이상 그것은 자본을 조롱할수도, 비난할수도, 테러를 가할수도 없다.

자본주의는 유일한 대항마는 자본주의 그 자체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본주의가 변해가는 방향이다.
즉, 자본 스스로의 변화가 자본주의의 유일한 공포대상이다.
우리가 몸이 아파 스스로를 돌아보듯
자본도 몸이 아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될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일뿐 그 흐름은 도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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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역할

memo 2011.01.20 15:25
교사는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어
학생에게 뭔가를 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아닌
학생이 모든 것에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독려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더 많은 가능성을 소개해주는 사람이다.
결국 모든 것은 학생 스스로 찾도록 곁에 있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교사가 이 이상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
교사의 역할을 넘은 그 무언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가령 직상 상사의 역할까지 하려면... 월급을 준다거나... 등등

교사가 학생에게 가르쳐 줄게 굳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세상에 그리고 클라이언트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법이다.
왜냐면 디자인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을 통한 소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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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광고의 문제

memo 2011.01.14 15:11

모든 예술과 디자인... 뭐... 기타 등등
모든 메세지들은 대체로 광고적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광고는 어떤 이익을 대변하고 옹호하고 논리화 한다.
물론 내가 말하고 의도하고 디자인하는 것 또한
광고라 말할 수 있다.

나는 '현대 예술이 광고'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으며
과거에도 미래에도 모든 메세지가 광고라는 것도 인정한다.

현대 광고의 주류는 상업광고다.
문제는 광고 자체가 아니다. 또 상업광고라는 분야가 아니다.
문제는 소재와 의도, 진정성이다.
공공의 이익... 혹은 보편적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딱히 옳고 그름을 따질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문제는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거나... 정신적, 물리적 피해를 주는 것,
나아가 지속가능한 우리 삶과 사회에 걸림돌이 되는 가치를
방관하거나 조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광고를 좋아하면서 (상업)광고를 우려하는 것이다.

물론, 나에게 시대의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을 묻는다면
머리로 주장만 할 뿐 여전히 가슴의 설득은 어렵다.
나 또한, 아무런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려만 할 뿐 여전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스스로 판단하려는 의지만 확고하다면
분명, 무분별한 상업광고에 대한 우려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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