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찾는 것은 자칫 말장난이 될 수 있다.
디자인은 분명히 예술의 한 측면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떼어져 예술과 비교됨으로서 갈구한다.
이는 예술에서 디자인을 인식한 짧은 역사를 가만할 때
디자인의 존재적 가치를 살핀다는 측면에서 말장난일지라도 그 노력은 의미가 있다.
지구상의 많은 분야의 역사가 그랬다.
과학, 수학, 인문학 등 대부분의 분야는 종교와 철학의 일부였지만
지금은 독립된 존재로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말할 때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최근 나는 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을 기준으로 두고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인식했다.

시대의 '보편적 가치'을 기준을 할때
예술은 무한히 자유로운 반면 디자인은 무한히 제한된다.
예술가의 교양은 보편적 가치에서 자유롭지만
디자이너의 교양은 보편적 가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래는 이런 의견에 대한 장황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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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예술가)은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저항한다.
우리는 예술의 이런 저항을 인정함으로서 가치를 인정한다.
당연하다고 혹은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것,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것
모든 것이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술은 언제 어디서나 반대할 자격이 있다.
이 사회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끼는 보편적 가치를 자극할 수 있다.
즉, 예술은 사회와 대척점을 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는 유일한 분야다.
톨스토이는 예술이 인간의 감정을 역사적으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건전한 감정, 건전한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의견에 동조하지만 예술은 그 어떤 제한도 제약도 없어야 한다는 점에서
톨스토이의 주장도 일종의 제한이자 제약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예술은 시공간에서 조차 자유롭다.
예술의 자유는 언제 어디서든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예술이 어떤 대상을 반대하고 찬양하는 것은 자유다. 타협은 억압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예술은 늘 도도하며 콧대가 높다.

반면 디자인(디자이너)은 어떤가?
그 시작의 논란은 있지만
디자인은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한계성내에서 존재해왔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한 디자인은 언제나 자본주의에 봉사한다.
지금 이 사회가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에 봉사할 것이며
파시즘이라도 혹은 봉건주의라도 그 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봉사할 것이다.
디자인은 현재의 보편적 가치를 떠나서는 존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이미지나 도구로서 그 시대의 보편적 가치를 반영하고 형성한다.
디자인은 시대에 한정된다. 디자인의 역사는 스타일로 존재하고 남겨진다.
예술의 스타일은 존재로서 시공간을 넘어 존재 가치가 있지만,
디자인의 스타일은 시공간 안에서 소비됨으로서 존재 가치를 획득할 자격을 갖는다.
때론 디자인이 보편적 가치에 저항하기도 한다. 이것은 주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저항이다.
간혹 새로운 대안으로 연결되도록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설득 가능한 논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논리는 곧 자유의 제약이며 제한이다.
이런 점에서 디자인은 그 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타협함으로서 존재한다.

디자인은 클라이언트 프로젝트가 많다.
(여기서 클라이언트는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 가치를 포함한다.
물질적인 클라이언트의 존재 여부는 디자인과 예술의 구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클라이언트는 보편적 가치가 예술성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이런 요구가 '디자인'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예술, 디자인, 보편적 가치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디자인은 예술과 보편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하고 대화하면서 긴장을 유발한다.
디자인은 예술과 사회의 보편적 가치 사이에 존재함으로서
둘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위해 늘 노력한다.
어느 한쪽을 거들기도 하고 둘 모두를 부정하기도 하고 타협을 꾀하기도 한다.

보편적 가치를 기준으로 할때 예술과 디자인은 분명 간발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사회는 경험과 상황에 따라 관점의 차이가 다양하기 때문에
이 간발의 차이를 인식하거나 통일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점을 의심하지만 대화의 결과는 늘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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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4월 2일부터 7월 3일까지 고양아람누리미술관에서
'공존을 위한 균형' 고양아람봄환경특별전이 열립니다.
건축, 회화, 디자인 분야 작가 25명이 만든 환경관련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공존 주제의 강연과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 퍼포먼스가 펼쳐집니다.

.전시일정 : 2011년 4월 2일(토) - 2011년 7월 3일(일)
.관람시간 : 화, 수, 목, 일 오전 10시 - 오후 6시 / 금, 토 10시 - 오후 8시 / 월요일 휴관
.입장료 : 일반 3,000원, 19세 미만 2,000원, 20일 이상 단체 1,000원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50%할인, 65세 이상 및 만 2세 이하 무료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참여작가
SectionⅠ - 원희연
SectionⅡ - 구혜린, 권영주, 김미라, 김성라, 김성현, 김유진, 김진수, 김태연, 문광진, 손찬,
손채성, 신정미, 윤호섭, 이경래, 이명우, 이성진, 이지영, 임근영, g.g
SectionⅢ - 박문종, 백우진, 이호인, 진기종, 한석현


출처 : http://www.greencanvas.com/html/main.html
자세한 내용 : http://www.artgy.or.kr/EH/EH0201V.ASPX?a=a&showid=0000003207&idperf=3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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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개월간 전시가 진행됩니다.
아직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약 4000명이 체험학습과 관람을 예약해둔 상태라고 합니다.
미술관 추정으로 3개월동안 약 5만명 정도 관람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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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자본주의 사회의 TV 드라마, 영화, 광고, 신문, 잡지 등등
모든 매체들은 이구동성으로 희망을 얘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희망을 일상적으로 늘 접하고 있다.
그렇기에 희망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리고 희망을 쫓는 삶을 살아간다.

현대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자본주의가 겪는 문제점들은 타협의 과정을 통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극복되고 힘든 과정을 통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자유의 비호아래 경쟁과 속도를 강조한다.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속도는 더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다층적이고 다양한 희망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희망에 눈이 멀어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현실'과 '이상'이 뒤범벅 되고 모호한 세상에서 '희망'이 기생한다.
'희망'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감정이라 믿는다.
본주의는 끝없이 문제점을 만들고 희망을 생산한다.
사람들에게 이 희망을 먹여 문제를 해결하게 함으로서 체제를 유지한다.

우리는 이 희망 때문에 늘 불안에 떤다.
희망을 이루면 다음 단계의 희망을 추구한다.
희망은 끝이 없다. 끝을 모르기에 우리는 늘 불행하다.
희망을 이뤘다는 잠깐의 행복은 마약과도 같다.
정신을 차리면 또 다른 무수한 희망의 유혹에 빠진다.
결국 희망의 끝을 보지 못하고 체념한채 생을 마감한다.
자본주의는 끝없는 희망의 낚시줄을 드리워 우리 삶을 낚는다.
극 소수를 제외하고는 늘 자신이 꿈꾸는 희망을 이루지 못한다.

희망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바로 실행에 옮기면 된다.
이것이 희망을 버리고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지금 당장 희망을 끈을 놓고 현실의 끈을 잡아야 한다.
희망의 끈을 잡고 여유를 부리다간 모든 것은 '운'에 맡길 수 밖에 없다.
'운명'이라는 오랜 진리는 이런 '희망'에 기생해 왔다.

보리수나무 아래 처음 입을 뗀 석가모니는 '사는 것이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삶의 고통은 자본주의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자본주의가 고안한 희망이라는 진통제는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우리는 고통을 반복하고 있다.

막연하게 희망을 믿지마라.
어리석은 희망이 지금 당신의 현재를 망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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