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3.20 DD Forum 5: 디자인과 예술
  2. 2011.03.20 일본 대지진을 보며....
  3. 2011.03.09 디자인에 설명은 필요 없다?
  4. 2011.03.01 가치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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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http://www.abc.net.au/news/events/japan-quake-2011/beforeafter.htm 
(일본 대지진 사진입니다.)

신문에서 일하는 저는 요즘 '일본 대지진'에 의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대형사건의 경우 신문사들간의 그래픽 싸움이 거의 전쟁 수준입니다.
오전에 타 신문의 그래픽과 팩트(사건, 보도내용) 등을 확인하고 
우리 신문이 무엇을 놓쳤는지 또 무엇인 부족한지를 깨닫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3D와 현장감을 살리기 위한 그래픽 구성에 눈이 휘둥그래져 내용과 뉴스를 망각하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현실을 망각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그래픽을 만들고 있지 않나...
자연이 만든 재앙, 또 인간이 만든 인재가 겹치고 겹쳐 일어난 하나의 사건에
제 욕심이 앞서 타신문과의 경쟁에 눈이 멀어
디자인(정보그래픽)의 또 다른 재앙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조용히 뉴스들을 확인하며 자연 앞에 숙연히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 지금까지 했던 그래픽들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래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끄적여 보았습니다. 

------------------------------------------------------------------------------------------------------------- 
문명과 자연 그리고 인간


자연이 문명을 쓸어가는 순간을 보며 경악했다.
우리는 문명이 자연에서 우리를 보호할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그리고 자연은 수차례에 걸쳐 경고를 보냈지만
문명은 그 경고를 무시한채 자연을 도외시한 문명만을 키웠다.



자연은 문명을 무자비하게 쓸어갔다.
자연이 문명을 삼킬때는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문명이 만든 순서와 순위는 자연앞에서 무색했다.
문명은 자연의 무자비함을 보면서도 숙연해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자연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경제 이야기를 앞세우고 있다.
심지어 타인의 아픔을 보고 경쟁을 고취시키는 표현도 서슴치 않게 쓴다.
이기심이 앞선 인간이기에 그런 것일까?
이런 인간성은 어디서 온 것일까?
결국 문명이 만든 인간성은 그 천박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간도 자연이다. 
자연이 만든 인간성이 있다. 
지진 피해 지역에는 수많은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다. 
방사성물질 피폭의 위험에 그 지역을 떠나려는 수많은 발길에도 불구하고
피해지역을 도우려 오는 수많은 발길도 있다.

뉴스에서 한 영국 소방관의 인터뷰는 인상적이다.
"아직 희망을 보지 못했지만, 포기할수는 없습니다."
가족을 찾는 목소리에 각종 소셜네트워크와 미디어들은 반응한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가족을 찾으면 같이 눈물을 흘린다. 기쁨과 희망의 눈물을...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고 전세계에서 서로의 고통에 공감한다. 


문명은 인간이 만들었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었다.
문명이 자연과 인간의 간격을 벌려놓았지만
자연에 의해 문명이 파괴되어 사라진 현장에는 
자연의 인간이 회복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문명 속에서는 문명의 인간들이 주판을 두드린다.



민영화 도쿄전력이 4조원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초기조치를 하지 않았기에 방사능 위협을 키웠다는 보도를 접하며 
절박하지 못한 문명화된 인간의 어리석을음 또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절박한 자연 인간의 따뜻함도 동시에 확인한다. 


'그린'을 언급하면서 나는 세가지를 꼽는다. 
'자연' '인간성 회복' '민주주의'
이번 사건을 겪으며
나에게 '민주주의'라는 인간이 만든 '문명적 가치'는 재고의 대상이 되었다. 
'인간성 회복'이라는 문제 또한 어떤 틀에서 볼 것인지 다시 재고하게 된다.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자는 나의 오만한 주장을 재고하게 된다. 
자연 앞에 모든 것이 무력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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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아니다.

+
디자인에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 그 자체는 사용(가치)로서 필요한 조건이지만 교환(가치)으로서는 충분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때 말과 글, 즉 논리가 개입함으로서 디자인의 교환가치에 충분조건을 부여한다. 이 논리는 시장에서 디자인의 교환가치만이 아닌 사회에서 디자인의 위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논리적 위상을 획득한 분야는 나아가 위상에 맞는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다. 비로소 디자인은 사회의 한 분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디자인에 설명한 필요한 이유를 장황히 나열해 보고자 한다.

++
가끔 디자인을 만들면 되지 뭐 굳이 설명이나 비평 따위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예전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종종 디자인보다는 말을 앞세워 주변을 홀리는 선배나 후배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눈꼴사납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는 그것을 PT(프리젠테이션)이라고 멋들어지게 말하지만 쉽게 말해 말과 글이다. ‘디자인’이란 말은 ‘말+글+실물’의 합성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디자인을 소통이라 말하면서 ‘디자인에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일단 디자인에 있어 언어적 소통의 불필요를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굳이 따지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언어이다. 그만큼 언어란 쉽고 편하고 평등한 소통수단이다. 이런 가장 수월한 소통수단을 버린다는 것이 자신이 ‘설명이 필요 없다’라고 말한 것과 모순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언어로 소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 위 논리는 괴변이다. 논리적 억지 부리기다. 우리는 뭔가 자신 없을 때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억지를 부린다. 어떻해든 자신의 감정을 논리화 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해 냄으로서 우리는 억지를 부린다. 어쩌면 이것이 언어의 본질이고 삶일지도 모른다.
디자인을 하는 과정을 보면 이런 억지가 많다. 다양한 시도는 좋은 것이라 멋지게 말해놓고 귀찮은 경우에 닥치면 스스로 논리화 시켜 억지 부리기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나 또한 자주 그런다) 디자이너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노력의 이유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 말하지만 만사가 귀찮아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대강 봐주길 바란다. 언어와 이성으로 소통하는 직업이 아닌 이미지와 감정으로 소통하는 업이니 당연한 태도라 스스로 합리화 한다.
이런 디자이너의 직업적 속성을 무기로 교묘하게 쉽게 일을 진행하려 한다. 대강 일을 하고 온갖 핑계거리를 찾으려 골몰한다. 상대가 눈치 못 채면 다행인데 계획대로 잘 안되면(내 게으름이 들통 나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삐진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감정을 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다는 둥 일이 많다는 둥(사실은 일을 빨리 끝내고 싶거나 두 번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투덜거리며 디자인 시안과는 관련이 없는 상황적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괴변이 아닌가? 이것도 억지다.

++++
이래서 디자인은 더욱 설명이 필요하다. ‘상황적 핑계’가 아닌 디자인 자체에 대한 설명!
핑계가 아닌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결코 쉽게 디자인을 해치워 버릴 수가 없다. 왜냐면 어떻게든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생각했고, 왜 이렇게 했는지 고심한 흔적이 구체적 설명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설명을 듣는 상대는 디자인시안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좀더 좋은 방향을 제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설명과 타협의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건질 수도 있다. 자신의 디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한다. 토론도 필요하다. 설명의 과정이 곧 합리적 설득으로 연결된다.

+++++
제대로 된 디자이너라면 설명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경험을 내보인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디자이너의 세계와 디자인 세상을 드러내는 일종의 디자인 문화의 언어적 소통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단순히 지금 디자인 시안이 아닌 상대방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설득하고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훌륭한 디자인 시안이 실패했다 치더라고 설명, 토론과 설득의 과정 속에서 상대방은 디자이너의 생각과 디자인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우겼지만 다음 프로젝트나 다른 곳에서 디자인을 의뢰할 때는 분명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인도의 영적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최선을 다 한다”

++++++
디자인 설명을 크게 확장하면 디자인 비평이라 말할 수도 있다.
‘디자인 비평이 왜 필요 한가’ 묻을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비평의 유무는 그 분야의 수준이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비평, 역사, 연구는 그 분야의 수준을 결정한다. 단순히 디자인 분야가 의자의 줄을 맞추고 책상 정리를 하거나 취향대로 옷을 입거나 물건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면 비평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좀 더 수준 있는 표현이나 디자인과 관련 된 분야의 어르신을 거론하며 거들먹거릴 필요가 있다. 가령 ‘타이포그래픽’ ‘상품미학’ ‘생태시스템’ 등 어쩌구 하면서 교양 있는 척 하기도 하고, ‘그리드’ ‘헬베티카’ ‘CMYK' 저쩌구 하면서 전문가인적 냄새를 풍기기도 해야 한다. 이런 상대방이 잘 모르는 알쏭달쏭 표현들은 디자인 분야를 존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방법이자 노력이다.
존중의 문제는 사실 좀 창피하다. 보통 못난 사람이 스스로 위축되서 존중받기 위해 유난을 떨고 자랑을 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가 포스에 눌려 존중해주는 것이 순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 분야는 아직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유치해도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런 걸 어쩌나...

+++++++
앞서 말한 내용들이 표면적으로 디자인 분야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사실, 디자인에 설명이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한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
바로, 디자이너 스스로의 자존감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을 처음 시작할 때는 디자인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디자인은 쉬웠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뭘? 컴퓨터 프로그램을 한달정도 배우고 몇 번의 경험을 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좀 익히고 나면 그 다음은 그냥 하면 된다. 왜냐면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지 이미 다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설명에 최신 스타일만 입히면 된다. 막상 디자인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에 뭔가 대단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음 깊숙이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투덜거리고 짜증을 냈다. 억지도 부리고 삐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된 말(표현)을 하지도 못하면서 디자인 시안 자체로 상대를 굴복시키기에는 너무나 디자인적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인 시안 자체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재능을 타고 나는 천재는 정말 드물다. 우리는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자신은 그런 재능을 타고 났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몇 번 상처를 받고 나면 깨닫게 된다. 나는 천재가 아님을...
그래서 결국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대안은 교양 있게 억지 부리기였다. 뭔가 전문적인 표현을 애써 써대며 억지를 부리면 상대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설득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왠지 뭔가 전문가가 된 기분이다. 도리어 상대가 나의 전문적인 표현에 눌려 선배로서 클라이언트(돈)로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져주는 척 하면 살살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다. 이때도 기분은 괜찮다. 상대가 나를 논리적으로 설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져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부족한 내 자신을 위로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좀더 교양 있어 보이고 전문가처럼 보이기 위해 좀 더 많은 책을 보고, 논문을 읽고, 선생님들을 쫓아다니고 이사람 저사람과 소통하면서 ‘억지’에 세련미를 더해갔다. 그러면서 가끔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경우도 생기고, 어떤 상대는 믿고 디자인을 아예 맡겨버리기도 하고, 어떤 상대는 ‘자문’을 원하기도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세련된 억지’는 생각지도 못하게 ‘신뢰’라는 보상을 받았다. (물론 여전히 상대의 억지나 논리에 굴복하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점차 나는 디자이너로서 자존감을 느끼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자존감은 바로 디자인분야의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자존감은 그 분야의 수준으로 연결된다.

수준 높은 분야에 속하면 다른 분야에게 존중받는다.

존중은 곧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분야는 점점 그 맹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 분야 안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설명’ ‘비평’에 어둡고 ‘억지’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논리가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일을 수준 있게 표현하고 수준 있게 행동함으로서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이 자존감은 사회적 대우로 보상받을 것이며, 사회에 좀 더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이자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공예문화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디자이너는 대량 생산을 전제로 하는 직업이기에 필수적으로 교양을 갖춰야한다’
그렇기에 힘주어 다시 한번 말한다.

“디자이너들이여 자신 있게 떠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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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가치의 변화

memo 2011.03.01 15:50
최근의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의문에서 촉발된
나의 삶과 디자이너로서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나는 어떤 가치에 둘러쌓여 살고 있는 것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지
또 어떤 가치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상황적 변화를 통해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종속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특정한 가치를 지향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둘러싼 어떤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최근 자아의 개념이 확대되고 자아를 인식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지향이 분명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이 사회가 구성한 가치지향의 폭 안에서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에
특별히 다른 삶이란 없다는 사실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지난 1년과 올해 이런 의문에 의해 읽게된 몇가지 책에서
지난 100여년의 가치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는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이라 말한다.
즉, 기존의 물건이 사용하는 것을 중요시한 사용가치가
이제는 자본의 축척을 위한 도구로 전락 됨으로서 화폐의 등장과 함께
물건이 교환을 위한 교환가치로 전락되었다고 말한다.
상대적으로 화폐는 본래의 교환의 척도나 도구로 이용되던 것에서
화폐가 자본적 전환을 이루며 사용가치가 급상승 되었다.
결국, 물건과 화폐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보드리야드는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빌린
자신의 책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 교환가치의 시대에서
기호가치의 시대로 전환되었다고 말한다.
이의 기초를 세운 곳이 바로 '바우하우스'라고 말한다.
보드리야드 바우하우스가 기존의 물건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물건을 구성하는 요소를
세세히 쪼개 각각의 특성을 살피고 그 사용성을 극대화 시키는 과정을 통해
어떤 물건의 '기호' 체계를 세우는데 공헌했다고 평가한다.
즉, '텔레비젼'라는 물건은 어떤 요소들이 각기 그 특성을 발휘하면서 구성됨으로서
일종의 '텔레비젼'라는 기호적 가치를 획득했다는 의미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기호가 엄청나게 많이 존재한다.
과거 플라톤이 진짜 개는 이데아에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여러 형태의 개는 그림자라고 표현했듯이
진짜 텔레비젼이라는 기호는 우리 머리속에 자리잡고
우리 눈에 보이는 텔레비젼는 그림자로서 여러 형태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 사회는 이런 수많은 기호적 가치의 홍수속에서 기호를 통해 표현하고 살아가고 있다.
마르크스의 '교환가치'는 이제 '기호가치'로 전환되었다고 보드리야드는 선언하듯 단정한다.

최근 이런 '기호가치'의 특성을 파악한 자본가와 기업들은 이를 교묘히 활용해
자신들의 자본에 기호를 도입함으로서 시장을 형성했다.
우리가 최근 많이 언급하는 '브랜드'가 바로 이 기호이다.
애플이라는 회사의 무형적 기호는 마치 텔레비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호와 같은 작용을 한다.
애플이라는 브랜드에서 나오는 수많은 제품들은 또 하나의 기호를 형성함으로서 우리는 애플이라는 기호(브랜드)를 소비한다.

이렇게 '사용가치'는 화폐의 자본화에 의한 '교환가치'로
또 '교환가치'는 물건을 정의하는 '기호가치'로
그리고 '기호가치'는 시장에서 소비의 패턴을 형성하는 '소비가치'로 전환되었다.

최근, 환경문제와 인권, 민주주의의 문제,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세계화에 대한 문제로 인해
우리 사회는 또 하나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현재의 중동사태는 억압된 중동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저항해
세계화에 맞선 지역화를 구축하려는 하나의 흐름이 아닐까 짐작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곳곳에서 비주류적 형태로 현재의 가치에
저항하여 종교적, 사상적, 전문적, 지역적 운동들이 활발하게 이어진다.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장체제다.
시장의 지나친 소비조장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소비구조와 패턴 변화를 위한 방향이 활발하게 모색되고 있다.

나는 이를 '인간가치'라 여기고 있다.
이제 '소비가치'는 '인간가치'로 전환하고 있다고 본다.
수많은 기업들인 이런 '인간가치'를 위한 경영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며
수많은 소셜네트워크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변화를 위한 기본적 바탕이 되어 가고 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인간가치' 다음이다.
그 다음은 과연 어떤 가치로 전환될 것인가이다.
왜냐면 이런 변화는 역사를 거듭할수록 그 속도를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용가치에서 교환가치로의 전환에 약 100년 걸렸다고 치면
그 다음의 여러 가치 변화는 채 100년도 걸리지 않았고
지금의 가치변화는 그 속도가 더할 것이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교환가치의 큰 틀인 현재의 소비가치를 비판하고
디자인의 사용가치로의 전환, 인간가치로의 지향을 주장해왔다.
사용가치는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고
인간가치는 교환가치의 전향적 변화를 의미한다.
어쩌면 이 둘의 가치는 서로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이를 통합할 새로운 가치... 그것이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 모순된 구조를 벗어날수 있는지...
또 내가 과연 지금의 사회 가치에서 자유로울수 있을지...
여하튼 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며 이렇다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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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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