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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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에는 반드시 설명이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 그 자체는 사용(가치)로서 필요한 조건이지만 교환(가치)으로서는 충분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때 말과 글, 즉 논리가 개입함으로서 디자인의 교환가치에 충분조건을 부여한다. 이 논리는 시장에서 디자인의 교환가치만이 아닌 사회에서 디자인의 위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논리적 위상을 획득한 분야는 나아가 위상에 맞는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다. 비로소 디자인은 사회의 한 분야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디자인에 설명한 필요한 이유를 장황히 나열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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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디자인을 만들면 되지 뭐 굳이 설명이나 비평 따위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예전에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맞장구를 쳤다. 종종 디자인보다는 말을 앞세워 주변을 홀리는 선배나 후배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눈꼴사납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말과 글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우리는 그것을 PT(프리젠테이션)이라고 멋들어지게 말하지만 쉽게 말해 말과 글이다. ‘디자인’이란 말은 ‘말+글+실물’의 합성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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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소통이라 말하면서 ‘디자인에 설명이 필요 없다’는 것은 일단 디자인에 있어 언어적 소통의 불필요를 말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굳이 따지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언어이다. 그만큼 언어란 쉽고 편하고 평등한 소통수단이다. 이런 가장 수월한 소통수단을 버린다는 것이 자신이 ‘설명이 필요 없다’라고 말한 것과 모순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미 언어로 소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알고 있다. 위 논리는 괴변이다. 논리적 억지 부리기다. 우리는 뭔가 자신 없을 때 나름대로 논리를 세워 억지를 부린다. 어떻해든 자신의 감정을 논리화 하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설명해 냄으로서 우리는 억지를 부린다. 어쩌면 이것이 언어의 본질이고 삶일지도 모른다.
디자인을 하는 과정을 보면 이런 억지가 많다. 다양한 시도는 좋은 것이라 멋지게 말해놓고 귀찮은 경우에 닥치면 스스로 논리화 시켜 억지 부리기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나 또한 자주 그런다) 디자이너의 노력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노력의 이유를 듣는 것은 중요하다 말하지만 만사가 귀찮아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대강 봐주길 바란다. 언어와 이성으로 소통하는 직업이 아닌 이미지와 감정으로 소통하는 업이니 당연한 태도라 스스로 합리화 한다.
이런 디자이너의 직업적 속성을 무기로 교묘하게 쉽게 일을 진행하려 한다. 대강 일을 하고 온갖 핑계거리를 찾으려 골몰한다. 상대가 눈치 못 채면 다행인데 계획대로 잘 안되면(내 게으름이 들통 나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삐진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감정을 주기 위해서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다는 둥 일이 많다는 둥(사실은 일을 빨리 끝내고 싶거나 두 번 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투덜거리며 디자인 시안과는 관련이 없는 상황적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이것은 괴변이 아닌가? 이것도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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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디자인은 더욱 설명이 필요하다. ‘상황적 핑계’가 아닌 디자인 자체에 대한 설명!
핑계가 아닌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다면 결코 쉽게 디자인을 해치워 버릴 수가 없다. 왜냐면 어떻게든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왜 이렇게 생각했고, 왜 이렇게 했는지 고심한 흔적이 구체적 설명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설명을 듣는 상대는 디자인시안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좀더 좋은 방향을 제시하거나 비판할 수 있게 된다. 설명과 타협의 과정에서 운이 좋다면 좀 더 좋은 아이디어를 건질 수도 있다. 자신의 디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한다. 토론도 필요하다. 설명의 과정이 곧 합리적 설득으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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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디자이너라면 설명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디자인 철학과 경험을 내보인다. 이것은 간접적으로 디자이너의 세계와 디자인 세상을 드러내는 일종의 디자인 문화의 언어적 소통으로 연장되기도 한다. 단순히 지금 디자인 시안이 아닌 상대방에게 디자인이란 무엇인지 설득하고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훌륭한 디자인 시안이 실패했다 치더라고 설명, 토론과 설득의 과정 속에서 상대방은 디자이너의 생각과 디자인 분야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비록 지금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우겼지만 다음 프로젝트나 다른 곳에서 디자인을 의뢰할 때는 분명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인도의 영적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아는 만큼 최선을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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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설명을 크게 확장하면 디자인 비평이라 말할 수도 있다.
‘디자인 비평이 왜 필요 한가’ 묻을 때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비평의 유무는 그 분야의 수준이거든요”라고 말한다. 그렇다. 비평, 역사, 연구는 그 분야의 수준을 결정한다. 단순히 디자인 분야가 의자의 줄을 맞추고 책상 정리를 하거나 취향대로 옷을 입거나 물건을 사는 수준이 아니라면 비평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변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좀 더 수준 있는 표현이나 디자인과 관련 된 분야의 어르신을 거론하며 거들먹거릴 필요가 있다. 가령 ‘타이포그래픽’ ‘상품미학’ ‘생태시스템’ 등 어쩌구 하면서 교양 있는 척 하기도 하고, ‘그리드’ ‘헬베티카’ ‘CMYK' 저쩌구 하면서 전문가인적 냄새를 풍기기도 해야 한다. 이런 상대방이 잘 모르는 알쏭달쏭 표현들은 디자인 분야를 존중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종의 방법이자 노력이다.
존중의 문제는 사실 좀 창피하다. 보통 못난 사람이 스스로 위축되서 존중받기 위해 유난을 떨고 자랑을 한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가 포스에 눌려 존중해주는 것이 순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디자인 분야는 아직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유치해도 할 수 없다. 세상이 그런 걸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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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내용들이 표면적으로 디자인 분야에 필요한 것이기는 하다.
사실, 디자인에 설명이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한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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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디자이너 스스로의 자존감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을 처음 시작할 때는 디자인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디자인은 쉬웠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뭘? 컴퓨터 프로그램을 한달정도 배우고 몇 번의 경험을 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좀 익히고 나면 그 다음은 그냥 하면 된다. 왜냐면 일을 의뢰하는 사람이 어떻게 만들지 이미 다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설명에 최신 스타일만 입히면 된다. 막상 디자인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자인에 뭔가 대단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마음 깊숙이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투덜거리고 짜증을 냈다. 억지도 부리고 삐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된 말(표현)을 하지도 못하면서 디자인 시안 자체로 상대를 굴복시키기에는 너무나 디자인적 재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디자인 시안 자체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재능을 타고 나는 천재는 정말 드물다. 우리는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자신은 그런 재능을 타고 났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장에서 몇 번 상처를 받고 나면 깨닫게 된다. 나는 천재가 아님을...
그래서 결국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대안은 교양 있게 억지 부리기였다. 뭔가 전문적인 표현을 애써 써대며 억지를 부리면 상대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설득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왠지 뭔가 전문가가 된 기분이다. 도리어 상대가 나의 전문적인 표현에 눌려 선배로서 클라이언트(돈)로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져주는 척 하면 살살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다. 이때도 기분은 괜찮다. 상대가 나를 논리적으로 설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내가 져주는 것이다.
이 방법은 부족한 내 자신을 위로하는데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좀더 교양 있어 보이고 전문가처럼 보이기 위해 좀 더 많은 책을 보고, 논문을 읽고, 선생님들을 쫓아다니고 이사람 저사람과 소통하면서 ‘억지’에 세련미를 더해갔다. 그러면서 가끔은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경우도 생기고, 어떤 상대는 믿고 디자인을 아예 맡겨버리기도 하고, 어떤 상대는 ‘자문’을 원하기도 한다. 세상에나... 이렇게 ‘세련된 억지’는 생각지도 못하게 ‘신뢰’라는 보상을 받았다. (물론 여전히 상대의 억지나 논리에 굴복하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점차 나는 디자이너로서 자존감을 느끼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자존감은 바로 디자인분야의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자존감은 그 분야의 수준으로 연결된다.

수준 높은 분야에 속하면 다른 분야에게 존중받는다.

존중은 곧 일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자인분야는 점점 그 맹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디자인 분야 안에 있는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설명’ ‘비평’에 어둡고 ‘억지’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논리가 필요하고 비평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일을 수준 있게 표현하고 수준 있게 행동함으로서 스스로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 이 자존감은 사회적 대우로 보상받을 것이며, 사회에 좀 더 가치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파이자 미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공예문화에서 이런 표현을 썼다.
‘디자이너는 대량 생산을 전제로 하는 직업이기에 필수적으로 교양을 갖춰야한다’
그렇기에 힘주어 다시 한번 말한다.

“디자이너들이여 자신 있게 떠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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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igeryoo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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